아버지

좋은 아버지는 없다.

두 아들 아빠 2013. 12. 18. 12:32

아버지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신념 중에 하나가 자신이 아주 좋은 아버지는 아니라도 그럭저럭 나쁜 아버지는 아니라는 것과 둘 째, 더 확신에 찬 점은 그래도 자기 아버지보다는 낫다는 신념다. 이 두 가지 신념이 개인에 따라선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론적으론 둘 다 잘못된 신념이다.

 

자녀에게 특히 아들에게 아버지는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다. 신체나 정신적으로 전혀 위해를 가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다. 휴일에 아버지가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행위 자체가 어느 정도 큰 아들에게는 위협적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문제는 풀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크게 '전적인 신뢰' - '의심' - '시기, 질투' - '적대감' - '거부내지는 부정' - '깨부심' - '연민'이라는 사이클을 가지게 된다. 이것들이 모두에게 순서대로 오지는 않는다. 아주 어린 나이에 자기 아버지를 부정하고 마음 속으로 깨부셔 버리기도 한다. 여기에 존경심을 끼워 넣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존경심이 아니라 마지막에 느끼는 '연민'에다 덧칠을 한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불효를 존경심으로 마치 고물과 엿을 바꿔 먹듯이 한 일이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 워낙에 좋은 아버지는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그나마 아주 조금씩 발전하는 이유에 중에 하나는 이 세상의 아버지들이 자기 아버지보다는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의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받아 들여야 한다. 좋지 않은 환경의 시대를 지나 좀 더 진보된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서 그렇게 된 것이다. 

 

현재보다 한 걸음 더 앞서야 진정한 진보이며 만일에 자기 아버지 시대와 비스무리하면 현상 유지가 아니라 분명한 퇴행이다. 자신은 꼰대 소릴 들으면 그만이지만 그 자식은 거의 죽음이라고 봐야 한다.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신적인 존재다. 좀 더 크면 그게 아니라는 의심이 들게 되며 어머니를 독차지하는 아버지를 시기와 질투한다고 프로이드는 일렀다.  

 

능력있는 아버지도, 무능력한 아버지도 둘 다 아들에게 좋은 본보기라고 하기 어렵다. 능력있는 아버지에 눌려 신음하는 아들들과 능력없는 아버지 때문에 입에서 단내가 나는 아들들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세상 살이가 어렵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아버지이라는 굴절된 프리즘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바보들은 많지 않다. 그 시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강물이 어제의 강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다음세대는 현재가 자기들의 시작점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에 잘못된 것은 알지 못하고 지금 당장 자기 현실에서 좋지 못한 것이 눈에 띄게된다. 과거 우리가 참거나 용납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여기서 간극이 생기게 되는데 세대 갈등의 핵심이다. 예전에도 좋았고 현재도 가치가 있으며 미래에도 꼭 존재해야 하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확신도 없으면서 뭔가를 자식에게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어떤 스님이 이런 말을 하더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기 보다는 좋은 남편이 되라'

"스님! 스님은 둘 다 없어서 잘 모르시겠지만 그거 둘 다 졸라 힘듭니다! 스님은 그 화상들 피해서 산으로 가신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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