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취미

영화 변호인

두 아들 아빠 2013. 12. 19. 13:53

송강호! 그의 신끼들린 연기를 보았다. 양아치와 변호사 역을 거뜬히 소화해 내면 가히 성격배우라고 칭해도 좋다고 본다. 한편으론 송강호가 두 역할을 잘 해낸 것은 두 집단이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그는 더스틴 호프만에 능가 할만한 성격배우로 거듭나고 있었다. 영화는 감독이 이끌지만 때론 주연 배우가 끌어 가기도 한다.

 

이 영화는 영화 내외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었다. 굉장히 허접한(또는 말도 안되는) 스토리 전개인데 왜 눈물이 나냐는 불편함이다. 같은 시대를 산 방관자의 눈물이라고 해 두자. 영화 외적으로 불편한 점은 감독과 출연진들이 한사코 어떤 인물과 연관 짓지 말고 그저 영화로 봐달라고 하는 점이다.  

 

분명히 노무현을 모델로 해 놓고 그게 아닌 것 처럼 해달라는 어이없는 주문 말이다. 송강호도 출연제의를 1차 거절했었다고 한다. 거절한 이유가 웃긴다. 어떤 인물을 표현 한다는게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배우의 본업이 그거 아닌가? 그만큼 노무현은 우리 시대에 금기다.

 

이 영화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아주 작은 부분을 다루었다. 작지만 시작이었고 바울처럼 다마스커스의 뜨거운 모래밭 위에서의 극적인 반전은 아니였지만 당시 35세의 노무현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이 세상을 이끄는 두 축의 집단은 정치와 사법부다. 정치에서 행정과 관료집단을 결정하고 컨트롤하며 사법부는 법을 집행하는 집단이다. 언론도 또 다른 권력이라고 하지만 영화에서도 표현되듯이 본질은 경찰과 함께 권력의 하수인뿐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늘 나쁜 짓을 하는 것 아니다. 평소에는 공평하고 약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문제는 결정적일 때 꼭 나쁜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이 세상이 좋아질 듯 하면서 좋아지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 시대와 지금이 다른 점은 극악스러운 고문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고문을 하지 못하면 사건조작은 할 수 없다. 고문의 고리는 그들이 '잃어버린 10년' 이라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끊은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가 나아 진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소수를 고문했지만 이명박근혜정권은 국민 다수를 놓고 조작하고 고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역사에서는 '오직 국가를 형성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주목을 끌 수 있다.'고 한 헤겔의 유명한 말은 한 가지 형태의 사회조직에만 배타적인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해롭기 짝이 없는 국가숭배주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마땅히 비판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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