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취미

밀당에 대해서

두 아들 아빠 2016. 9. 2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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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 정희진씨의 글을 편집, 각색했다.

 

밀당은 좋지 않은 소모적 행위다. 일단, 밀당의 전제는, 더 사랑하고, 더 헌신하는 쪽이 약자다. 연애에서 ‘조차’ 권력자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피곤하고 약간, ‘저질스러운 권력투쟁’이다. 밀당 대신에 차라리 공개적인 협상이 낫다.

 

밀당과 협상은 어떻게 다를까? 밀당은 겉과 속이 다른 상태에서 가면을 쓴다. 따라서 성질 급한 사람은 못한다. ‘약속시간에 늦게 나가고’ ‘먼저 일어서야 하며’ ‘질투심을 유발해서 얻은 것’이 진정한 사랑일 수 없다. 그렇게 얻은 사랑은 나중에 ‘존중’받지 못했다는 서운함이 복수로 돌아 올 수도 있다. 대개의 복수는 더 크게 돌아온다.

 

협상은 계속해서 상호신뢰를 확인해 가는 과정을 겪는다. 거기서 믿음이 생긴다. 믿음은 다 믿기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이건 광신) 믿지 못하는 지점과 믿는 지점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다. 밀당은 아무리해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밀당이 여성적인 면은 그 안에는 이중성과 모순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숙하면서도 섹시하다’ ‘남자를 잘 조정하면서도 남자 위에 있지 않는 현숙한 아내’ 일 수 있는데, 이는 여성의 성역할 노동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밀당에 힘을 쏟는 대신에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낫다.

 

착한 여자와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다르다. ‘착한 여자’는 좋은 거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문제다. 착한여자 콤플렉스는 여자에게만 착한 것이 강요되는 것을 말한다. 페미니즘이 반대하는 것은 착한 여자가 아니라 착한 여자 콤플렉스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는 말은 악담이다. 착한 여자가 성공해야 좋은 가정이고 좋은 사회가 된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걸린 여자는 착하면서도 자기를 위해 다 챙기려고 머리를 굉장히 써야 하기 때문에 과로사 할 우려가 있다.

 

‘밀당을 잘 해야 연애를 잘한다.’는 것도 잘못된 정보다. 아니, 연애까지는 잘할 수 있다. 결혼으로 까지 못가서 문제다. 그렇지 않더라도 밀당을 즐기다가 상대편이 강하게 쳐, 꼬리를 완전 내리게 되면, 앞서 즐겼던 밀당은 없어지는 거품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흑 역사가 된다..

 

명언이 있는데 ‘남자들이 말이 없는 것은 과묵해서가 아니라 화제가 없어서 혹은 무식해서다’. 말 많은 남자가 훨씬 낫다. 말 없는 남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위험한 남자다. 폭력적인 남성을 알아보려면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안다. ‘사랑’보다는 ‘존중’이 훨씬 어렵다.

 

밀당엔 더 사랑하는 사람이 ‘패자’라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성장한다. 모든 문학 작품은 ‘그가 나를 떠났다. 나 홀로 남겨졌다’ 이렇게 남겨진 사람의 시점이지 ‘내가 너를 버렸도다.’ 이런 관점으로 쓰인 작품은 전 세계에 하나도 없다. 사랑을 받기만 한 사람은 언어가 없다.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언어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좋지 않은 권력의 의지만 내려 놓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