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성공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일간 그 친구의 아내를 만나보고 근간의 사정을
자세히 알아 본 후 어떻게 도울 것이가를 생각 해 보자고 했습니다. 쾌히 승락을 하더군요.
이게 슬기로운 역할 분담이지요. 저보다는 바쁜 친구에 대한 배려이고요. 또 그친구는 저보다
더 많은 도움을 줄것 아닙니까!
돈으로 생활만을 유지 시켜준다고 도움받는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용불량자들 중에서 악성 채무자를 찾아다니며 카드사를 대행하여 채권추심업무를 전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직장이나 집으로 방문하여 만나보면 반응이 딱 두가지라고 합니다.
당혹스러움과 뻔뻔함!
자기가 먹고 쓰느라 탕진 한 사람은 표정이 당당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의 빚보증이나 순간의 실수로 그렇게 된 사람은 어쩔줄을 몰라 한다고 하는데 그 반응만 보아도 사람의 성향과 빚의 내력을 단번에 알아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뻔뻔한 사람에게는 아주 거칠게 밀어 붙인다고 하더군요.
남을 돕는 다는 일이 전체적으로 공의로운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예로 가령 카메라가 클로오즈업 되어서 상처난 사람과 그를 열심히 돌보는 동료가
있습니다. 고름을 자기 입으로 빠는 등 헌신적인 돌봄을 보면 누구나 감탄을 하지요. 하지만
카메라가 서서이 멀어지면서 그 두사람이 해적선 갑판위 있는 해적들이었다면 역시 같은 감탄을 할 수 있을까요? 남의 배를 노략질 하다가 다친 동료를 구하는 행위는 다시 같이 해적질을 하려고 하는 행위 이상이 아니지요.
친구 이야기로 돌아와서
남자가 먼저 부부크리닉에 가자고 제의하여 딱 한번 같이 갔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내가 왜 그런데 가냐고 하여 중단 됐다는 것입니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제가 아는 그 친구의 아내는 신혼초에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시댁가족과 어울리지 못함이지요. 아애 어울리려고 하지 않고 거부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잘 모릅니다. 그게 남편의 외도와 무책임으로 갈 수 있는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두 사람으로부터 지어진 두 딸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지니고 있을 것이고 한에 사무친 어머니를 보면서
이세상을 어찌 생각할까 하는 염려이지요.
가정이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만나서 아이 낳고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지어진 것이 아니지요.
가정은 이땅에서 천국의 왕국입니다.
공의로운 왕과 자애로운 왕비,자녀는 다음세대를 열 공주와 왕자 입니다.
왕비가 되어도 공주병에 벗어나지 못한 여인과 스스로를 시녀로 만든 여인,
그 밑에서 영혼이 신음하는 공주와 왕자들...
그 모든 것은 권력만 휘두르는 패악하거나 무책임한 왕의 책임이지요.
그녀는 처녀때 말수가 적어 조용한 그리고 곱고 예뿐 여인이었습니다.
눈밑에 기미가 잔뜩끼어있을 그녀를 만난다는 사실이 제 가슴을 무겁게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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