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방, 농촌

인생은 유람선, 어선, 상선 그리고 해적선 1.(유람선 편)

두 아들 아빠 2006. 1. 9. 08:57

 

마이애미 호화 유람선

 

어린시절을 비교적 풍족하게 살아 온 사람은 배움과 여유로움에서 풍겨나오는 그들만의 특유의 문화가 있다. 주변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들에게 문화적인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그런 자신들에게는 열등감이라는 것을 키워서 본의 아니게 그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이는 일을 한다.

 

배움과 여유로움이 있는 사람이 성장하여 그 삶을 잘 유지 하거나 그렇지 못한 이유는 단지 재수가 좋거나 나뻤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있다.

 

인생을 바다를 항해하는 긴 여정으로 비유를 하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우리의 태생은 유람선의 여유로운 선착장의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비린내가 진동하는 어항이 있고, 물건을 실고 내리는 분주한 상선 전용의 부두도 있다.

 

만일 인생이 한번 오른 배를 계속 타고 간다면 작은 어선을 타고 가는 사람은 정녕 억울한 일이다. 그리고 큰 배라고 풍랑을 만나도 그떡 없다면 이 세상에 신이 존재 한다고 누가 믿을 것인가?

 

배를 갈아 타기도 하고 타이타닉호 처럼 순신간에 참몰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좀더 상세히 말하자면 유람선의 일등 좌석을 구매에서 승선 했다가 가진 돈이 거덜나서

자신이 즐겼던 카지노 매장의 스낵바에서 알바를 할 수도 있고, 비린내 나는 작은 고깃배에서 멀미에 구토를 해 가면서 잡은 고기가 만선이 되어 다음 항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유람선으로 바꿔 타기도 한다.

 

태생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억울한 마음이 두고두고 있는 듯하다.

반면에 좋은 환경의 태생은 착각을 불러오게 한다. 마치 자신이 선택 받았다는 생각이나

좋은 환경 속에 자기의 조그만 노력이 모두 자신이 이룬 것 같은 착각 말이다.

부모의 돈으로 오른 유람선 갑판에서 저 아래 냄새나는 고깃배의 사람들을 처다 보며 애처로웠다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좋은 태생을 타고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남을 위해서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를 그 부모들이 가르쳐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자녀를 어렵게 하는 짓이다.

 

해적선의 선장이 자기 자식에게 남을 위하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설령을 말을 했다고 해도 그 해적의 자식이 애비의 말을 알아 듣기는 할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