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보통아이 공부시키기 2. 왜 자녀를 공부 시키나?

두 아들 아빠 2006. 7. 18. 14:10
  한국의 경제 발전을 단지 한국만의 노력으로 이루었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제의 세계사적인 흐름이 주도를 했으며 이 흐름을 잘 탄 것이다.

그래서 박 정희 한 사람이 주도로 한국의 경제발전을 논하는 일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부모세대의 피와 땀으로 교육을 받은 것이 밑바탕이 되었으며, 우리는 그 열매를 고스란히 따먹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어르신들은 자녀를 공부시키는 이유로 선비 정신을 높이 샀다.

50~70년대 자녀를 둔 부모들이 미래에 있을 마이카 시대를 예견하고 그 열매를 따 먹으라고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배운 자가 뭔가 다르다는 의식이 앞섰다.

현 기성세대는 교육의 목적부터 다른 출발선상에 있었다.

그러면 현재는 어떠한가?


오로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아닌가?

공부를 게을리 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고작 하는 말이 “너 그렇게 하면 형편없이 못사는

인생을 살게 될 꺼야” 하며 윽박지른다.

그렇게 해서는 공부를 하겠다는 동기는 유발은 되지 않는다.


우리 근대사에서 교육은 일제 때 우리전통문화와 의식은 거의 말살 당하다 시피 된 상황에서 서양의 교육제도를 그대로 유입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역사가들은 이 시점을 ‘개화기’라고 하는데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전 시대는 원시 시대였다는 것이다.


해방 후 60년이 넘도록 일제 시대에 도입한 학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국민’이 ‘초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신적인 지주 없이 지식만 유입된 것이다. 기독교가 물밀 듯이 들어왔지만 성경 속의 ‘그 나라의 의’를 구하기는커녕 세상의 ‘의’도 구하지 못하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화적인 전통과 교육의 괴리는 의식과 지식의 분리를 가져왔으며 이제까지 이 문제에 관하여 누구도 심도 있게 문제를 삼지 않았다. 그 결과 학문을 배우는 목적 자체가 불분명 하게 되어 단지 ‘먹고사니즘’으로 귀착되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수학이나 여타 과목을 공부하면서 ‘이런 걸 배워서 나중에 어디에 써 먹냐’고 곧잘 반문을 한다. 부모와 교사는 이에 관하여 궁색한 설명을 하기에 바쁘게 되었다.

공부는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능고사 준비이다.


오늘날 문명사회가 과연 야만의 거칠음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지식이 습득 되어도 경쟁 사회라는 이유로 양육강식의 야만의 시대와 별반 차이가 없다면 분명 잘 못된 것이다.

야만과 원시적인 삶 속에서는 의식의 발전은 기대 할 수 없다. 지식은 세상의 섭리를 배워서 이를 토대로 ‘양질의 의식 발전’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