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보통아이 공부시키기 3. 왜 공부를 해야 하나? (자녀에게 설명은 이렇게)

두 아들 아빠 2006. 7. 19. 15:30

예전에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고작 자기 이름이나 쓸 줄 알았다. 내 경우는 한문으로도 쓸 줄 알아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입학을 했다. 한글은 물론 영어도 배우고 가는 요즈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 급식이나 스스로 먹을 수 있도록 해서 보내야 하는데...


초등학생이 ‘왜? 공부를 해야 하냐’고 반문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문제를 당당히 제기하여 부모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 때 대답을 차분히 해주어야 한다.

‘공부는 이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운영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사람이 이를 몰라서는 짐승과 구분이 되지 않으며 공부를 게으르게 하면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많다.’

잘 먹고 잘 살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렵지 않게 살려고 한다는 편이 더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


초등학교 때는 세상을 익히는 기본적인 것들을 다루게 되는데, 문제를 이런 것을 가르치고는 시험을 보고, 등수를 매긴다는데 있다.

토론을 중심으로 현상에 관한 각자의 창의성을 유추하는 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큰 틀에서 중학교 평준화는 이에 관하여 획기적인 반전을 이루었다. 이 문제는 교사의 수준을 높이고, 교사 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갈수록 여자아이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사춘기라는, 언제 가는 치 루어  야 할 홍역이 다가 온다.

중학교 시절을 잘 보내지 못하는 여학생들을 보면 이때를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첫 멘스를 하면 고작 케익에 촛불 키고 축하를 하는 정도이다.

육체의 변화를 정신의 변화로는 인식을 하지 못하여 이런 측면의 어드바이스가 가정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이다. 의식은 훌쩍 커버렸는데 이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주변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또래보다는 고학년 남학생과 어울리게 되고 사고를 친다.


공부를 하는 시기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미래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교육이 자녀 따로 부모 따로 가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배움 자체를 ‘먹고사니즘’으로 전락한 오늘날 기성세대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오직 돈 벌어오는 기계로 전락시켰다. 미래세대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은 학교와 학원에 몽땅 맡겨 버린 것이다.


부모 밑에서 공부를 하는 시기는 온전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기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만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역할 분담을 해서 얻은 대가로 가정의 경제를 유지하고, 정신적이 지주가 되고자 배우는 것이며 이 배움에는 끝이 없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어가며 주변의 환경과 자신의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