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스쿠니에 있는 일본의 혼 ‘가미카제 특공대’

두 아들 아빠 2006. 8. 15. 08:53
 ‘가미카제’ 신의 위력으로 분다는 바람. 폭풍우가 많은 일본에서는 바람의 존재를 두려움으로 인식하며, 신의 위덕(威德)에 복종하지 않으면 가미카제의 변이 내린다는 믿음이 있었다.

역사상으로 1274년과 1281년 2회에 걸쳐 몽골군선(軍船)이 하카다만에서 괴멸된 사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제목에서 ‘혼’이라고 했지만 그들의 주장이지 사실 ‘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표면의 힘’이지 정신이라고까지 승화 시켜서 말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무라이가 서민 앞에서 칼이나 차고 거드름 피우며 무의도식 살아오게 한 자신의 영주를 위해서 목숨을 내 놓은 행위에 불과하다. 이를 집단적인 최면상태를 걸어서 강요를 하는 것이다.

 


가미카제 특공대 이야기는 경악을 넘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수 있는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제국주의 집단적 광기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 유례가 없었던 인간 폭탄인 가미카제 특공은 비행기 몸통을 그대로 미 함대에 부딪쳐서 스스로 폭탄이 되어 죽어가는 인간 폭탄 작전이다. 1944년 10월 25일 최초의 자살 특공대 비행기 탑승자는 '세키 유키오 '대위를 비롯한 24명이었다.


이들의 지침서에 따르면 목표물을 바라볼 때는 적선의 한 가운데를 겨냥해서 바라볼 것, 절대 눈을 감지 말 것, 죽을 때에는 ‘필살!’ 이란 구호를 외칠 것 등이 적혀 있었다. 4천 명이 넘는 가미카제 대원들이 이 지침서를 외우며 죽음을 향해 비행했다.


일본군 특공기 다섯 대가 미국항공모함 '세인트로'를 향해 자살공격을 시도한 결과 미군 항공모함은 화염에 휩싸이며 침몰하게 된다. 이날 일본군의 자살 공격의 여파는 한 달 뒤인 11월 24일 미군의 대대적 일본 본토 공습을 초래하게 되어 일본의 패망을 예고하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독한 놈은 독하게 당한다.’는 것이 세상 진리이며, 자국의 영토를 옥쇄로써 지킨다는 결의는 결국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지폭탄을 불러들인 것이다.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가 출진하기 전 마지막 송별연에서 불렀다는 '벚꽃 동기생' 이라는 노랫말을 보면 당시 일본인들의 집단 광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벚꽃 동기생'


네 녀석과 나는 벚꽃 동기생/ 같은 항공대 정원에서 피어났다./

그대와 나, 벚꽃 동기생아/  이 별을 겹쳐가며 사라질지라도/

꽃의 수도, 야스쿠니 신사여/ 봄이 오면 거기서 꽃피어 만나리.


이들이 다시 꽃으로 피고 싶어 했던 야스쿠니 신사는 이들에게 꽃의 수도일지 모르지만, 침략 전쟁을 당한 근동의 국가에게는 분노와 원한의 진원지이다. 그러나 당시 그 일본 젊은이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우리나라 근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 우는 서정주는 당시 가미가제에 대한 칭송을 이렇게 했다. (서정주를 우리나라 근대의 최고의 시인이며, 국문학사적인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분들께 이 시를 헌상한다.)


 

 

 

 

 

 

 

 

 

 

서정주의 <오장 마쓰이 송가>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 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름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위에

조용히 돌아 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마들어 보낸 비행기 한채에

그대 봄을 실어 날앗다간 내리는 곳

소리 없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고 목숨을 뺏으로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면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느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르이 산천이여

한결 더 짙 푸르른 우리의 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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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철저한 반미주의자가 친미주의자로 돌아서는 데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해방 후에 이승만에게 붙어서 그의 전기를 써주었지만, 이미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낯이 가려웠는지 책의 발간을 중지시켰다. 그 대신 문교부의 과장자리를 하나 얻었다.

이런 자가 우리나라 건국의 교육정책을 담당 했다. 


'시만 잘 쓰면 어떤 행위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게 하고 '영원성의 미학'만을 외게 해서 진실을 왜곡하게 하는 그런 무거운 짐을 누가 지고 가겠는가?

이는 자신의 가족을 성폭행 자라 할지라도 그 죄와 불리하여 재능은 공개적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럴만한 관용이 있기는 하는가?

 

매년 10월이 되면 조중동은(특히 중앙일보) '국화옆에서'라는 제목으로 서정주의 생가에서 시문학 축제를 연다. 이는 친일파에 대한 정죄의 희석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미카제가 처음 산화한 44년10월과 우리의 국화를 연상시킨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가미카제에 대하여 전 일본인이 집단적 광기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당시 22살의 조종사였던 미야기 요시이는 “우리 가미카제 대원들은 아무것도 아닌 로봇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나는 내 죽음에 어떠한 명분도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고 있다”며 자신의 허무한 죽음을 일기에 고백했다.


또한 1945년, 가미카제를 뚫고 오키나와에 상륙한 연합군에 맞서 부대를 지휘했던 야하라 대령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정치가들이 우리를 전쟁으로 내몬 건 자신들의 권력 보존을 위해서다. 그런 자들을 위해 우리가 죽어간다니 어느 누가 이 비참한 심정을 금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한수산씨는 소설 ‘까마귀’에서 가미카제 특공대의 광기어린 무모함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에는 자살과 순교가 있다. 자살이 자신의 의지로, 의지라는 숭고함에 가장 배치되는 삶의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순교는 자신의 의지로 이 땅에서의 왜곡된 진실에 항거하는 가장 힘찬 저항이다.(기독교인의 순교는 하나님나라의 사명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요구되는 가장 숭고한 믿음의 길이다)


이들 자살 특공대의 선택은 자살도 순교도 아니다. 자신의 목숨과 삶을 다른 삶을 살해하는데 사용했을 뿐이다. 그들은 광기어린 살의 속에서, 왜곡된 지휘부에 저항조차 못하는 소모품이 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숭고한 의미와 가치, 목숨의 원형질 그 고아한 정신에 대한 더 할 수 없는 모욕이 된다. (한수산 장편소설 까마귀 제2권 270-271, 해냄 출판)

 

또한 소설 「까마귀」에서 작가는 영국과 일본의 차이를 재미있게 비교했는데,

‘지정학적으로 같은 섬나라이면서 영국이 해양 국가를 표방하며 정복국의 문화와 관습을 보장해주며 공생의 길을 모색한 반면 일본은 대륙정복이라는 미명아래 육지로 눈을 돌리며 정복국의 문화와 관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야비함을 드러낸 결과 패전국으로 전락함과 동시에 지금까지도 과거의 오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참혹한 원폭을 맞은 일본은 미국과 세계의 양식 있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왔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최고의 전범인 천황을 유지시켜 주는 은혜로 자신들의 잔혹성을 무마했다.


일본은 전통적인 해양세력인 영국과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한반도를 기점으로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전략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그만큼 일본은 단순, 집착, 집요한 종족이다.

식민지를 껌으로 비교 하자면 영국과 미국은 단물을 빨고 뱉어버리고, 일본은 그런 후에 삼켜 버린다고 할까?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때 일본의 자살 공격을 받고 그 후 60년이 지나서 광적인 이슬람교도의 여객기를 이용한 가미가제식 자살 공격을 자국의 경제 심장부에서 맞았다. (조작의 의혹이 있지만) 그런 이후 두 나라는 본토를 유린 당 했다.

억울함을 당한 아이가 맞을 것을 뻔히 알면서 어른에게 욕을 해서 두들겨 맞고는 속으로는 시원하다고 하는 가학적인 처절한 저항이다.

유린을 당한 국가나 그에 상응한 보복을 한 국가나 ‘독한 놈은 독하게 당한다.’는 것이 세상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원폭으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 전경

 

일본의 일부 지도부는 아직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표면의 힘’을 가지고 이웃 나라를 능욕하는데 익숙한 그들은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자신들을 숭배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생적 친일파인 이들 숭배자들은 극일(克日)이라고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자는 식으로 다가 선다. 그런 다음에는 ‘조선인은 엽전’이라고 비하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 말이 얼마나 균형이 없냐면,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 만행은 거론 하지 않고 잘나가는 현실만을 비교하고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들이 깔 본 말인 ‘엽전의식’이라 하는 과거 조선 말기에 묶어 놓고 비교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은 그 ‘엽전’에서 제외 된다는 미국적 사고방식의 신 지식인층이다.


일본은 역사상 우리가 분열이 되어있을 때 정확히 공격을 해 왔다. 작금의 우리의 정치 상황이 분열되어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분명한 오판이다.

노무현대통령은 나약한 조선의 선조가 아니며 작금의 대한민국은 제 몸 하나 지킬 수 없는 조선말의 이름만 거창한 황제국이 아니다.


일본 정신의 정체가 문화의 단순함으로 돌아와서 한류의 문화 융단 폭격을 받고 있다.

올바르지 못한 과거 회귀형의 일본 고이즈미총리의 신사 참배는 그리 반대 할 일도 아니다. 이는 분명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이다.

 

일찍이 김 구선생은 문화강국의 조선을 꿈꾸어왔다. 지금 그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