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계백장군과 화랑관창 이야기

두 아들 아빠 2006. 9. 6. 12:18
  교과서에 소개되어 구국의 정신을 가르쳤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쓰러져 가는 백제를 구하려고 가족과 자신의 목숨을 버린 계백장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어린나이에 용감무쌍하고 장열하게 죽은 관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둘 다 주인공이라고요!

맞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이 속한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두 장수 이야기를 후대에 교훈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교훈 이전에, 단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야만’입니다.

10배가 넘는 적의 군사를 대적하겠다는 무모함이나, 어린아이를 선봉에 세워서 더구나 갑옷까지 벗겨지는 수모를 당한 아이를 또 다시 적진으로 뛰어 들게 방관, 아니 그런 눈치를 준 신라의 어른 장수들은 모두가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런 것이 교훈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신라의 ‘화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호연지기를 키우는 화랑도!’ 이따위로 배웠죠.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미성년자를 전쟁터로 내몬 야만적인 행위였습니다.


당시 신라는 지정학적으로 산악이 많고, 농토가 백제에 비하여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백제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군사의 수를 늘려야 했기 때문에

당시 17세의 관창도 전쟁터에 끌려 나온 것입니다. 일종에 자살 공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죽을지 뻔히 아는 아이를 선봉에 세워서 아이가 처참하게 죽은 모습을 보여, 신라 병사들의 분노를 키워 일시에 적을 무너트리려는 아주 야만적인 전쟁심리전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효과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통하지도 않고 시도 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몸에 해로운 담배를 미성년자에게 팔면 벌을 받는 세상이니까요.


  다음은 계백장군의 문제입니다.

계백장군은 전술적으로 실패한 장수였습니다.

‘황산벌 전투’라고 하면 벌판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좌, 우측의 산으로 이루어진 병목 지점입니다. 적은 숫자의 병사로 많은 적을 대적 하려면 좁은 길목에서 전투를 벌려야 합니다.

당시로써는 병법을 최대한 이용하였지만, 승산 없는 일전을 벌리느니 오히려 깊은 산악이나, 고구려와 외교적인 관계를 맺고 이를 근거지로 장기적인 게릴라전을 펼쳤어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고 전쟁터에 나갔다는 사실은 이 전쟁에서 승리 할 가망성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의자왕이 결사 항전을 지시했는지 모르겠으나, 훌륭한 장수라 하면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은 버려서라도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도모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무모하게 5천의 병사로 5만의 신라의 군사와 당나라의 연합군을 상대로 싸운 것입니다.

전쟁에는 ‘항복’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노예가 되느니 죽음을 택한 것이지요.

‘항복이 치욕’이라는 것은 국가주의적 발상입니다.

 

어차피 일반백성들이나 병사들은 국가가 바뀌어도 신분의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죽을 때까지 싸우거나 자결을 한 것입니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아 온 의자왕과 계백이 자신의 목숨을 내 놓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자신들이 부려먹어 왔던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을 죽음에서 구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후대에 교훈으로 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침략자인 신라는 죄 없는 백제를 멸한 것도 모자라서 자신들의 당위성을 가지려고, 사실과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의자왕과 삼천 궁녀’입니다.

당시 인구로 보아 왕이 궁녀 삼천이나 대리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음은 ‘포석정’입니다. 일국의 왕이 운치를 맛보며 술 한 잔하는 공간이 그렇게도 부패한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이는 백제는 부패한 나라였으며, 그래서 침략을 당해도 싸다는 논리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승자의 왜곡으로 점철된 기록’입니다.


교훈적인 것을 억지로라도 찾으라면, 희생양으로 삼은 화랑 ‘관창’, ‘반굴’은 모두 신라장군의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신라의 지도부는 아들을 기꺼이 승리의 제물로 받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 최고위층의 희생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자기 혼자 다 책임지듯 떠벌렸지만 정작 위기 때는 배신이나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랬기에 그나마 이 이야기가 교훈적이라고 생각 했는지 모릅니다.


역사란 배울 것이 있고, 경계를 삼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왜곡된 역사를 끌어다가 오늘날 잘못된 이념에 접목시켜서 당위성을 가지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천만 다행한 일은 이따위 이야기가 우리 자녀들의 교과서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