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소설' 보물섬'은 교훈적이지 못하다.

두 아들 아빠 2006. 9. 14. 09:41
영국 출신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어린아이 관점에서 쓴 어린이와 청소년 소설의 고전으로 통한다. 저자는 등대기사인 아버지 덕에 바다를 많이 접해서 이를 소제로 한 ‘바다 이야기를’(?) 쓴 것 같다.


이 세상의 많은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해적, 선장, 바다, 범선, 갑판, 무인도, 보물 등등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쳤다.

어릴 적 읽었던 희미한 기억을 되 세기며 다시 읽으니 ‘럼주’, ‘양철 컵의 코냑’ 등이 나올 때 마다 비스킷이나 치즈 한 조각을 안주 삼아서 그 술이 마시고 싶은 생각만 들지, 예전의 상상력과 가슴 두근거리는 희열은 맛 볼 수가 없었다.

해적과 거친 바다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저자가 술의 고장인 스코트랜드 출신이라서 술 이야기를 많이 등장 하는 것 같다.


고전으로 통하는 세계적인 책의 작가들은 대부분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어서 쓴 글이어서 삶의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진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래서 어린 학창시절에 읽은 책을 나이를 먹고 다시 읽으면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서 대학생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었다고 해서 저자가 말하는 사상이나, 이에 관한 비평을 올바르게 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난 후인 사십대 중반에 조용한 곳에서 집필을 하였다.


보물섬은 이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삼십대 초반에 쓴 글이다.

그나마 어린아이들의 심성과 관심사를 잘 담아 낼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런데 보물섬이란 소설에는 아주 큰 흠결이 있다.

바로 ‘보물’에 관한 인식이다. 저자뿐 아니라 읽는 이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

 

해적들이 무인도에 숨겨 놓은 금빛 찬란한 보물을 찾는 순간을 상상하면서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는 보물 이전에 해적들의 약탈물이다.

다 쓰지도 못 할 것을 마구 묻어둔 미련한 해적들은 현대 정신의학으로 말하면 집착증 환자들이다. 당시 영국의 전후 상황이 ‘해적들의 집단 집착증’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적들은 약탈 후에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사람을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약탈 물은 목이 잘리고, 불태워지고, 바다에 수장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의 것이다.

약탈한 것은 보물이 아니다. 그저 ‘장물’일 뿐이다.

이 장물은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함과 죽음의 표상이다. 이에 대한 관념이 애절함은 아니더라도 희열을 느끼거나 기뿐 마음에 가슴이 울렁이게 하면 안 된다.


이 부분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이런 것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그 부분을 잠시 표현하는데 핵심을 벗어났다. 오히려 이를 잘 미화했다.

제대로 하려면 책 이름부터 ‘약탈 섬’이나 ‘장물 섬’ 이라고 해야 한다.

악인이 약탈한 것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 책이 쓰여 진 19세기의 영국은 제 3세계에서 약탈한 재화를 바탕으로 고착화된 식민지 경제 지배구조로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영국은 1850년에(저자의 태생 년도) 세계에서 유일한 산업국가로서 세계의 공장이었고, 세계의 은행이었으며 그 힘에 의지해서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였을 때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보물섬’ 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사실은 그 이전에 자신들이 제 3세계에서 약탈한 것에 관한 사회적인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자녀들에게 생각 없이 그냥 책을 많이 읽히면 좋다고 하는데 분명 가려 읽혀야 한다.

서양에서 많이 읽혔다고 우리도 이를 따라서 읽어야 한다는 것은 곤란하다.

특히 원문을 줄여서 만든 책은 좋지 않다. 책이란 읽는 이의 이해력을 요 한다.

나이에 걸 맞는 책이 있으나 세상의 많은 좋은 책들은 어른이 되어서 읽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동족상잔의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여, 야간에 정권 투쟁하는 것을 보며 영국 자유주의 고전미디어를 자처한 더 타임스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우리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바다이야기’는‘ 바다 = 보물섬’ 이라는 연상을 이용한 일확천금을 바라는 우리들의 심리를 노린 것이다.

우리는 이젠 장미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대신에 이 책은 쓰레기통으로 던져 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