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과 준비
국토순례라고 거창하게 말한 도보여행은 실은 예전부터 내가 가고 싶었다.
그래서 순진한 아이를 2년 전부터 잔뜩 바람을 불어 넣으며 그 시기와 기회를 살피다가 지난주에 모든 여건이 허락되어 가게 되었다.
삼 개월 전부터 아들과 헬스장에서 런닝머신 속도를 5로 같이 맞추어서 걷는 속도를 유지한 것이 실제 도보여행시 큰 도움이 되었다.
도보코스는 순전히 지도상에서 결정을 했다. 첫날 부여에서 강경을 가는 길은 애초에는 금강을 따라서 가는 것이었는데 1/100,000의 지도로는 소로까지 나와 있지 않아서 중간에서 길을 되돌아 온 적도 있다. 사전 답사가 되지 않을 경우는 1/50,000의 지도를 구입해서 코스를 정해야 한다.
가급적 국도를 이용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떠나면서
옷은 각자 두 벌과 양말과 속옷은 네 벌씩 준비했다. 현금은 40만원과 카드를 가지고 갔다.
아이에게 5만원을 비상금으로 주었는데 녀석의 지갑에는 언제 마련한 돈인지 이미 2만원이 들어있었다. 잠자리는 첫날 부여의 찜질방이였고 그 다음부터는 모텔과 여관에 들었다.
세끼를 모두 사 먹어서 나중에는 식사 때문에 집 생각이 간절했다.
농촌의 현실과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아무 생각도 안하면서 줄곧 걷느라 실상은 별로 사람과 접촉하지 못했다.
돌아 본 지방의 느낌
지자체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서 온 동네의 후보자의 프렌카드가 없었다면 조용하다 못해 아주 침체된 느낌이었다. 사람과 돈은 모두 서울에 몰려있다는 느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서울과 수도권은 사람이 사는 최소한의 여건을 넘어 극에 다 다르고 지방의 소도시는 아주 딴 나라 같은 조용함에 양극화가 무언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더구나 생산시설은 미비하면서 그렇다고 계획적인 여건도 조정되지 않은 채 위락과 영화촬영장으로 범벅이 된 지역은 미래가 무엇인가 염려되었다.
아들과 대화
그나마 3개월간 헬스장을 오며가며 이야기를 나눈 것이 대화의 벽을 튼 것 같다.
걷는 동안에는 서로가 별 말이 없었지만 휴식시간에는 길옆의 논둑이나 소나무밭, 버스정유장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점심식사 후와 숙소를 잡고는 PC방에 갔다.
나는 사진을 올리고 아들은 게임을 하고... 그것도 매일..
나중에 아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P.C방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힘이 들어도 꾹 참고 걸었다고 한다.
자녀와 여행을 떠나시는 분들께 권한다. 여행지에서 P.C방에서 게임을 보장한다고 하면
자녀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여행까지 와서 뭔 놈의 게임이냐'고 하면 이미 자녀와는 많은 부분의 단절이 되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느 여관에서 불을 끄고 잠을 자기 전에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여섯 살 때 아빠가 미키마우스 인형으로 재미있게 인형극을 해 주셨는데 자기는 아빠에게 말을 잘 하지 못했다고... 그래서 또 해달라는 말을 못하고 아빠가 신문이나 T.V를 보고 있을 때 아빠 옆에 슬그머니 인형을 갖다 놓았다고 한다.
잠이 확 깼다. 그리고 가슴이 져며왔다.가슴이 P 져며왔다.>
누어있다 일어나서 그때 아빠가 인형극을 해 주었냐고 물었다.
해주었다고 한다. 휴~
내가 말했다. '대충 해주었지!'
아니라고 한다. 끝까지 재미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어! 이게 아닌데?'
난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 당시 아들이 내 옆에 슬그머니 갔다 놓은 인형을 감지하고 인형극을 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아빠인 것만은 또렸이 기억한다.
어리기만 생각한 아들이 이제 아빠의 표정과 마음을 읽고 배려까지 하고 있다.
난 그날 밤 쉽게 잠이 들지 못했지만 아들은 이내 잠이 들었다.
잠자는 아이의 볼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집으로~ 강남고속터미날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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